경영

고속 성장 기업과 정체 기업, 그 차이는 리더십에 있다


72%가 성장했지만, 진짜 ‘빠르게’ 자란 기업은 29%뿐이다

모든 기업이 성장을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고속 성장을 이루는 곳은 얼마나 될까?

글로벌 헤드헌팅·리더십 자문사 Egon Zehnder가 2026년 2월 발표한 ‘The Anatomy of Growth’ 보고서가 이 질문에 숫자로 답했다. 전 세계 500명 이상의 매출 책임 C-레벨 임원(CMO, CRO, CGO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지난 1년간 성장을 기록한 기업은 72%에 달했다. 하지만 10% 이상 매출 성장률을 달성한 ‘고속 성장’ 기업은 단 29%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건 규모별 차이다. 중소 규모 기업의 32%가 10% 이상 성장한 반면, 대기업은 20%에 그쳤다. 큰 배는 더 느리게 움직인다는 통념이 데이터로 확인된 셈이다.

그렇다면 고속 성장 기업과 정체 기업을 가르는 결정적 변수는 무엇일까? 보고서의 답은 명확하다. 운(luck)이 아니라 리더십이다.


1. 고속 성장 리더가 다르게 하는 것들

Egon Zehnder 보고서가 밝힌 고속 성장 기업 리더들의 공통점은 기술이나 자원이 아니라, 리더십 역량과 마인드셋이었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꼽은 리더십 자질은 다음과 같다:

  • 회복탄력성(Resilience): 40%
  • 적응력(Adaptability): 36%
  • 용기(Courage): 29%
  • 호기심과 개방성(Curiosity & Openness): 23%
  • 경청(Active Listening): 22%

주목할 점은, AI가 모든 비즈니스 대화를 지배하는 시기에도 이들이 ’기본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술 도입보다 사람을 이끄는 역량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가장 중요한 스킬로는 고성과 팀 구축(48%)이 1위였고, 이어 데이터·분석·AI 리터러시(44%), 크로스펑셔널 협업(33%)이 뒤를 이었다. 기술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을 만드는 능력이 여전히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2. EY CEO Outlook 2026: 제휴와 M&A가 성장을 압축한다

EY-Parthenon이 발표한 ‘CEO Outlook 2026’ 보고서는 성장 전략의 다른 축을 조명한다. CEO들의 50%가 M&A의 핵심 목적으로 운영 최적화와 생산성 향상(디지털화 포함)을 꼽았고, 45%는 매출 성장 가속화를 선택했다.

더 눈에 띄는 숫자는 전략적 제휴(JV·얼라이언스) 의향이다. 2025년 62%에서 2026년 79%로 급등했다. 유기적 성장만으로는 속도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EY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이렇다: “M&A는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 도구가 아니라, 전환(transformation)을 가속화하는 전략적 지름길이다.” AI 네이티브 기업 인수를 통해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고, 고성장 세그먼트 인수로 매출을 끌어올리는 식이다.

다만 이런 전략이 작동하려면 딜 초기부터 통합(integration)에 대한 명확한 의도가 있어야 한다. 시너지를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3. 2026년 리더십의 7가지 전환

Proaction International이 정리한 ’2026년 리더십 7대 트렌드’는 실무 리더들에게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공한다.

첫째, AI 리터러시는 기본값이 됐다. Korn Ferry의 Bryan Ackermann은 “기술과 AI를 마스터한 리더는 시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한다. 리더가 직접 AI 도구를 실험하고, 소규모 파일럿 프로젝트를 돌리며, 윤리적 판단까지 해야 하는 시대다.

둘째, 회복탄력성과 적응력이 핵심 경쟁력이다. London Business School은 “지속적 변화가 기존의 가정과 믿음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수년간 유효했던 운영 방식을 바꿀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러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실시간으로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셋째,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이다. 시나리오 분석, 디자인 씽킹, 사후 분석(Post-mortem) 같은 구조화된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장기적 해결책을 개발해야 한다.

4. 피드백의 역설: HBR의 새로운 연구

HBR 2026년 2월호에 실린 Danbee Chon과 Francis J. Flynn(스탠퍼드 경영대)의 연구는 리더십의 미묘한 측면을 조명한다.

핵심 발견: 직원 피드백에 너무 빠르게 반응하면, 오히려 진정성(authenticity)이 떨어진다고 인식될 수 있다. 직원들은 피드백이 반영되길 원하지만, 동시에 리더가 자신의 판단력과 일관성을 유지하길 기대한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경청하는 리더”와 “흔들리는 리더” 사이의 경계선은 생각보다 얇다. 피드백을 받되, 전략적으로 일정 시간을 두고 소화한 뒤 변화를 실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5. 디지털 투자의 함정: 기술이 아니라 조직 설계의 문제

같은 호에 실린 Prabhakant Sinha 등의 기사는 디지털 투자가 실패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기업들이 AI, 분석 도구, CRM 플랫폼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으면서도 매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 도입(technology adoption)이 아니라 상업 조직(commercial organization)의 재설계 실패다. 새 도구를 도입하면서 조직 구조, 인센티브 체계, 업무 프로세스는 그대로 둔 것이다.

이는 앞서 Egon Zehnder 보고서가 강조한 ’크로스펑셔널 협업’의 중요성과 직결된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가 가치를 창출하려면 조직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6. 한국 시장에 주는 시사점

한국 기업들에게 이 데이터는 불편한 거울이다.

첫째, 대기업 정체의 구조적 원인. Egon Zehnder 보고서에서 대기업의 고속 성장 비율(20%)이 중소기업(32%)에 크게 뒤진다는 결과는 한국 대기업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 사일로화된 조직, 리스크 회피 문화가 적응력과 회복탄력성을 저해하고 있다.

둘째, 전략적 제휴의 부재. EY 보고서에서 글로벌 CEO의 79%가 JV·얼라이언스를 추진하겠다고 답한 반면, 한국 기업의 전략적 제휴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특히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 협업은 형식적 MOU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속도를 사는’ 전략적 M&A와 제휴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리더의 AI 리터러시 격차. 한국 기업의 C-레벨 임원 중 AI를 직접 실험하고 활용하는 비율은 글로벌 평균에 못 미친다. 임원 교육이 세미나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파일럿 프로젝트를 직접 주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야 한다.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결론 자체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번 Egon Zehnder 데이터가 흥미로운 건, AI 시대에도 리더들이 가장 중요하게 꼽는 역량이 ‘팀 빌딩’(48%)이라는 점이다. AI 리터러시(44%)가 아니라.

이건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다. 고속 성장 기업의 리더들이 실제로 회복탄력성, 적응력, 경청을 핵심 자질로 꼽았다는 건, 기술 투자만으로는 성장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다.

내 생각에, 2026년의 진짜 리더십 위기는 AI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AI를 아는데도 조직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HBR이 지적한 “디지털 투자가 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현상의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다.

한 가지 의문은, Egon Zehnder 서베이가 자기보고(self-report) 방식이라는 점이다. “우리 회사가 고속 성장했다”고 답한 리더의 인식과 실제 재무 성과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500명 이상의 글로벌 C-레벨 데이터라는 점에서 경향성을 읽기에는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가장 위험한 조합은 ‘기술은 최신인데 조직은 구식’인 상태다. 많은 한국 기업이 정확히 이 함정에 빠져 있다.


성장은 전략이 아니라 리더십의 결과다

72%의 기업이 성장했지만 29%만이 빠르게 성장했다는 사실은, 성장 자체보다 성장의 질과 속도가 중요한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고속 성장 기업의 리더들은 AI를 도입하면서도 팀 빌딩을 최우선에 놓았고, 회복탄력성과 적응력을 핵심 자질로 삼았으며, 크로스펑셔널 협업으로 조직의 벽을 허물었다. 기술 투자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한국 기업의 리더라면, 올해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우리는 기술을 도입했는가, 아니면 기술이 작동하는 조직을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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