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희토류 자석을 대체한다 — EV·클린에너지 공급망의 게임체인저
전기차 한 대에 숨겨진 지정학적 리스크
전기차 한 대를 만드는 데 희토류 1~2kg이 필요하다. 모터 안의 네오디뮴 영구자석이 없으면 고효율 토크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희토류의 정제·가공 능력 90~94%가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030년까지 자동차용 희토류 수요가 5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EV 산업은 ’보이지 않는 병목’을 안고 달리고 있다.
2026년 2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두 가지 돌파구가 등장했다. 뉴햄프셔대학교(UNH) 연구팀은 AI로 67,573개 자성 화합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고온 자석 후보 25종을 발견했다. 인도 스타트업 Vimag Labs는 아예 자석 없이 모터를 구동하는 ‘가상 자석(Virtual Magnet)’ 기술을 내놓았다. 여기에 나트륨이온배터리와 ASML의 EUV 광원 돌파까지, 2월 셋째 주는 소재·제조 혁신의 집중 발화 주간이었다. 이 기사에서는 이들 기술의 의미와 파급력을 분석한다.
1. UNH의 AI 소재 탐색 — 67,573개 화합물, 25개의 새로운 자석
뉴햄프셔대학교 물리학과 수만 이타니(Suman Itani) 연구팀은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활용해 수천 편의 학술 논문에서 자성 물질 데이터를 자동 추출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구축한 ’Northeast Materials Database’에는 67,573개 자성 화합물의 특성이 포함돼 있으며, 이 중 25개는 기존에 고온 자성체로 인식되지 않았던 물질이다.
핵심은 탐색 속도의 혁명적 변화다. 원소 조합으로 가능한 자성 물질 후보는 수백만 개에 달하지만, 실험실에서 하나하나 테스트하면 천문학적인 시간과 비용이 든다. AI가 논문을 읽고, 자성 여부와 퀴리 온도(자성을 잃는 임계 온도)를 예측하는 모델을 훈련시킴으로써, 후보군을 수백만에서 수십으로 압축한 것이다.
이타니는 “지속가능한 자성 소재의 발견을 가속화하면 희토류 의존도를 낮추고,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시스템 비용을 줄이며, 미국 제조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 저자인 장지아동(Jiadong Zang) 교수도 “실험 데이터베이스와 성장하는 AI 기술이 이 목표를 달성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2. Vimag Labs — 자석을 아예 없앤다
인도 벵갈루루의 딥테크 스타트업 Vimag Labs는 더 급진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대체 소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모터에서 영구자석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창업자 마니시 세스(Manish Seth)는 자동차 엔지니어 출신으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희토류 자석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근본적인 전환을 결심했다. “제품 전체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의존한다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가용성뿐 아니라 품질, 열적 한계, 설계 제약까지. 자석이 당신을 상자 안에 가둔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Vimag의 ‘가상 자석’ 기술의 원리는 이렇다. 영구자석은 모터 내부에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이 자기장을 물리적 자석 대신 구리, 실리콘 강판, 독자적 파워 일렉트로닉스, 실시간 제어 알고리즘으로 동적 생성하는 것이다. 자석 없는 모터(induction motor, switched reluctance motor)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효율과 토크 밀도에서 영구자석 모터에 미치지 못했다. Vimag는 소프트웨어와 전자 제어로 이 격차를 메우겠다는 전략이다.
아직 상용화 단계 이전이지만, 구조적 아이디어 자체가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급망 리스크를 ’소프트웨어로 우회’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3. 나트륨이온배터리 — 물을 남겨두니 성능이 2배로
같은 주, 영국 서리대학교(University of Surrey) 연구팀은 Journal of Materials Chemistry A에 나트륨이온배터리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연구를 발표했다. 비결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했다. 핵심 소재인 나트륨 바나듐 산화물(sodium vanadium oxide)에서 물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 물질은 열처리로 수분을 제거한 후 사용한다. 물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리대 팀이 이 가정을 뒤집자, 수화된(hydrated) 형태의 소재가 기존 나트륨이온 양극 소재 대비 거의 2배의 에너지를 저장하고, 충전 속도가 빨라졌으며, 400회 이상의 충방전 사이클에서 안정성을 유지했다.
더 흥미로운 발견은 이 소재가 바닷물에서도 작동한다는 점이다. 나트륨 이온을 해수에서 흡수하고, 흑연 전극이 염화물 이온을 제거하는 전기화학적 담수화(electrochemical desalination)가 동시에 일어났다. 리드 저자인 다니엘 코망되르(Daniel Commandeur) 박사는 “바닷물을 완전히 안전하고, 무료이며, 풍부한 전해질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담수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트륨은 리튬과 달리 지구상에 풍부하고 저렴하다. 이 연구가 상용화에 다가갈수록, 리튬 의존도를 낮추는 또 하나의 경로가 열린다.
4. ASML의 EUV 광원 돌파 — 칩 생산량 50% 증가 전망
2월 23일, 네덜란드 ASML은 자사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 장비의 광원 출력을 기존 600W에서 1,000W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기술이 공장에 적용되면, 2030년까지 시간당 실리콘 웨이퍼 처리량이 현재 220장에서 약 330장으로 증가한다. 칩 크기에 따라 웨이퍼당 수십~수천 개의 칩이 나오므로, 실질적 칩 생산량은 최대 50% 늘어나는 셈이다.
기술적 핵심은 주석 드로플릿(tin droplet)의 개수를 초당 약 100,000개로 2배 늘리고, 드로플릿을 성형하는 레이저 빔을 1개에서 2개로 확대한 것이다. ASML의 리드 테크놀로지스트 마이클 퍼비스(Michael Purvis)는 “단기 시연이 아니라, 고객사와 동일한 조건에서 1,000W를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1,500W까지의 경로가 비교적 명확하고, 2,000W도 근본적 한계는 없다고 덧붙였다.
ASML은 상용 EUV 리소그래피 장비의 유일한 제조사다. 이번 돌파는 미국·중국의 추격에 대한 기술적 해자(moat)를 더 넓히는 동시에, AI 수요 폭증에 따른 반도체 공급 병목 완화에 직접 기여할 전망이다.
5. 공통 맥락 — ’AI + 소재 + 제조’의 삼각 융합
이 네 가지 뉴스는 겉보기에 다른 분야지만,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공유한다. AI가 소재 발견을 가속화하고, 새로운 소재가 제조 비용과 공급망 리스크를 낮추며, 제조 기술의 돌파가 다시 AI 하드웨어 공급을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다.
- AI → 희토류 대체 소재 발견 (UNH)
- 소프트웨어 → 물리적 소재 의존 자체를 제거 (Vimag)
- 소재 혁신 → 배터리·담수 동시 해결 (서리대)
- 제조 혁신 → AI 칩 공급 확대 (ASML)
이 삼각 융합은 2026년 이후 테크 산업의 핵심 동력이 단순한 ’소프트웨어 혁신’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의 병목을 AI로 해소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6. 한국 시장에 주는 시사점
한국은 세계 2위의 EV 배터리 생산국이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라는 반도체 강국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희토류 공급은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며, 중국 의존도가 극도로 높다.
첫째, AI 소재 탐색 역량 확보가 시급하다. UNH 사례처럼 AI로 새로운 자성 소재를 발견하는 경쟁이 본격화되면, 이를 먼저 상용화하는 국가가 EV 모터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간다. 한국의 KIST, KAIST 등 소재 연구기관이 AI 기반 소재 탐색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해야 한다.
둘째, 나트륨이온배터리는 한국 배터리 업체에게 기회이자 위협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리튬이온 기술에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나트륨이온이 ESS(에너지저장장치) 시장에서 빠르게 침투하면 저가 세그먼트를 내줄 수 있다. 중국 CATL은 이미 나트륨이온배터리를 양산 중이다.
셋째, ASML 장비 확보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1,000W EUV 장비가 나오면 웨이퍼당 비용이 낮아지지만, 장비 대수 자체가 한정적이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선점 확보 전략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번 주 소재·제조 뉴스들을 보면서 느낀 건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고 있다”는 명제가 이제 물리적 세계까지 확장됐다는 것이다.
UNH의 연구는 인상적이지만, 67,573개 화합물 데이터베이스에서 실제로 상용 영구자석이 나오기까지는 5~10년은 걸릴 것이다. 자성 물질 후보를 AI로 찾는 것과, 대량 생산 가능한 영구자석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엔지니어링 과제다. Vimag의 가상 자석도 개념적으로 매력적이지만, 영구자석 모터 대비 효율과 내구성을 입증하기 전까지는 회의적인 시선이 불가피하다.
반면 ASML의 1,000W 돌파는 즉각적 영향력이 다르다. 이미 검증된 제조 파이프라인의 병목을 직접 넓히는 것이므로, 2028~2030년 반도체 공급 확대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가장 주목하는 건 나트륨이온배터리의 담수화 가능성이다. 에너지 저장과 물 정화를 동시에 하는 시스템이 현실화된다면, 이건 단순한 배터리 기술이 아니라 인프라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물 부족 지역에 태양광 + 나트륨이온 시스템을 설치하면 전기와 깨끗한 물을 동시에 공급할 수 있다. 물론 바닷물 환경에서의 장기 안정성은 아직 미지수이지만, 방향성 자체가 강렬하다.
물리적 병목을 푸는 자가 다음 10년을 지배한다
2026년 2월 셋째 주에 쏟아진 소재·제조 혁신 뉴스들은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한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의 제약을 얼마나 빠르게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다. 희토류 의존도, 리튬 부족, 반도체 공급 병목 — 이 세 가지 물리적 병목을 AI와 소재 혁신으로 풀어내는 국가와 기업이 다음 10년의 승자가 될 것이다. 한국의 소재·반도체·배터리 기업들에게는 기회의 창이 열려 있지만, 그 창은 오래 열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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